본문 바로가기
은행이야기

은행원 이야기 12번째 - 은행 퇴사 이유 본점 편

by 카르페디엠 니키 2023. 1. 18.

은행원들은 어떤 직원이 본점에 간다고 하면 마치 승진을 한 것처럼 축하를 해줍니다. 대부분의 은행원들에게 본점은 가고 싶은 곳입니다. 손님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래도 본점은 지시하고 영업점은 따르는 게 많아 권한이 좀 더 있는 곳입니다.

 

 
 
저는 2019년 본점을 2번째로 갔습니다. 다른 동기들이나 직원들은 본점을 잘도 가네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이 부서에서 결국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은행이야기 다른 편
은행원 이야기 1편 - 내 이력
은행원 이야기 2편 - 은행원의 아침 업무
은행원 이야기 3편 - 은행 신입으로 들어오면?
은행원 이야기 4편 - 은행원 실적 압박
은행원 이야기 5편 - 은행원 연봉
은행원 이야기 6편 - 은행 창구별 업무 특성( 예금창구 , 상담창구 , 기업창구 , 로얄창구 )
은행원 이야기 7편 - 은행원들의 착각
은행원 이야기 8편 - 23년 우리은행 신년사 전문 분석
은행원 이야기 9편 - 은행 취업 현실 - 스펙 , 학벌 , 자격증 , 영어 점수
은행원 이야기 10편 - 23년 신한은행 신년사 전문 분석
은행원 이야기 11편 - 은행 퇴사를 한 이유 영업점 편
은행원 이야기 12편 - 은행 퇴사를 한 이유 본점 편
은행원 이야기 13편 - 은행 직급
은행원 이야기 14편 - 발령 받으면 좋은 지점, 안 좋은 지점
은행원이야기 15편 - 은행원 퇴근시간, 워라밸
은행원이야기 16편 - 은행 본점 vs 지점 비교, 차이점
은행원이야기 17편 - 은행 취업에 실패하는 이유(feat. 인적성)
은행원이야기 18편 - 본점 부서와 업무는 어떤 게 있을까요?(feat. 입사 후 포부)
 
 
 

1. 자기결정권

돌아보건대 저는 자기 결정권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본부부서에 갔지만 제가 한 번도 지원한 적이 없는 부서였기에 처음부터 달갑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부서와 보직이 꽤 자주 바뀌었습니다. 부서가 바뀔 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제가 지원하지도 않은 부서에 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 예시로 HSK 고급 중국어 자격증이 있는데도 계속 글로벌 관련 부서에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근처도 못 갔습니다. 저보다 중국어를 잘하는 직원이 은행에 몇이나 있었을까요?
 
 
꼭 글로벌 관련 부서가 아니더라도, 제가 은행에 다니면서 저의 적성과 맞을 것 같은 부서 지원도 많이 했으나 어쨌든 관련 부서와 보직은 전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은행에 어떤 자리가 비게 되면, 너는 그 자리를 가서 채워라. 그렇게 그 일을 열심히 배워놓고 나면, 쓱 또 다른 쪽에 배치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은행에서 55살까지 다니게 될텐데 내가 나에 대해서 결정할 수 있는게 뭘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해야된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슨 일을 하게 될지 협의의 과정이 전혀 없고 은행의 부서발령은 일방적인 통보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회사의 구성원이라는 느낌보다는 부품이란 느낌이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2. 눈치, 시간의 자유

지점에서는 일 잘하고 영업 잘하면 눈치 볼 게 없습니다. 일 조절을 잘 하면 퇴근도 빨리 할 수 있구요. 그런데 본점은 윗 사람의 의중을 살피는게 정말 큰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본점에 발령 받은지 6개월 동안 정말 거짓말 안하고 월화수목금 5일 중에 최소 3일, 많으면 4일을 술을 먹었네요. 평일에는 아예 제 시간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퇴근하고 술을 먹고 밤 12시 넘어 집에 돌아갔다가 아침 6시에 술에 쩔어 일어나서 7시반 ~ 8시까지 출근하던 기억이 나네요. 생각해보면 그 당시 점심을 먹으면 맨날 토를 할 정도로 위가 안 좋았는데 어떻게 견뎠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ㅎㅎ
 
 

3. 전문성 

약 10년 동안 회사에 일하면 특정 부분에 경력이 쌓이고, 전문성이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어렵게 쌓아왔던 영어, 중국어 실력은 완전히 퇴화되는데, 반면 나는 무엇을 성취하고 있는지 본점에서 정말 많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영업점에서 영업을 하는 게 오히려 더 전문성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는데, 제가 본점에서 막판에 제가 하는 일은 부행장, 부서장의 변명거리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올해 실적이 좋지 않으면, 실적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는 10가지 이유, 즉 변명거리를 재무적으로 분석해야 했습니다.

 

 
 
변명을 준비하는 일은 정말 일 같지 않은 일입니다. 업무 자체에 매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이  때부터 본점 업무에 약간 질리게 되었습니다. 일 자체가 어렵진 않았지만, '무슨 이런 일이 메인 업무야?' 라는 생각에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이런 일을 하다간 내 미래도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현재 시간을 계속 죽이는 꼴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윗사람의 변명거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말 쓸데없는 띄어쓰기 지적이라든지 ( 맞춤법은 제가 맞는데, 보기에 이게 좋다는 억지 ) 빨간펜 선생처럼 고친걸 다시 고치다가 결국 원래 보고서로 회귀하는 과정은 많은 직장인들이 똑같이 느끼는 과정일 겁니다. 또한 다른 부서에 가서 목표를 깎아달라던지, 수치를 조정해달라든지 무리한 요구를 저에게 시키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성과를 개선하는 것도 아니고, 부족한 성과를 변명하고 목표를 조정해달라는 일이라니. 지점에서 영업하는게 훨씬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거 있잖아요. 부서장이 다른 부서에다가 각종 컴플레인, 항의를 하는 일은 저를 시키고 제 반복적인 컴플레인을 못 견디니,  다른 부서장까지 보고가 들어가서 우리 부서장에게 전화하면 우리 부서장은 그 땐 또 사람 좋은 척 하는거 있잖아요. 저는 그 과정에서 약간 예의 없는 직원이 되기도 하구요. 생각 해보면 그 순간은 좀 힘들기도 했었고, 지금 생각해봐도 그 부서장이란 사람 정말 역겹더라구요. 
 
 
물론 부서장이 괜찮은 사람이었어도 일 자체는 재미 없는 일이었습니다.이런 일들이 주업무가 되다 보니까 '아 정말 재미없다'라고 느꼈습니다. 좀 더 전문성이 있고, 정말 어디 가도 나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진짜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4. 불합리함

은행에서는 저에게 귀찮고 힘든 보직을 많이 주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걸 해야 너가 성장을 해야한다며, 그래서 어려운 보직, 하기 싫어하는 보직을  참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보통 성과는 적고, 귀찮은 일들만 많은 일들일 뿐입니다. 다만 그 일을 맡으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의욕이 그래도 있는 사람들에게 일을 주는 식이죠.
 
 
저는 그런 상황들이 은행에 반복되서 2014년, 2017년 퇴사 시도를 이미 했습니다. 무언가 열심히 하면 보직을 바꿔버리고, 보직이 바뀌면 또 열심히 하다가 또 보직이 바뀌고, 하지만 기존 일들은 완전히 제가 벗어날 수 없고 새로운 일은 쌓이고 그러다보니 매년 일이 쌓이더라구요. 한 예로 퇴사가 이미 결정나고 퇴사일 2주일 전까지 저는 제 일 + 휴가간 2명 일까지 3명의 일을 하다가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승진이 빨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냥 평균으로 했습니다. 저는 종종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하는 조언이 잘 못 됐다고 느껴왔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교에 가면 남은 인생은 편할 것처럼 말하잖아요. 현실은 그런가요? 그렇지 않잖아요. 은행에서 선배가 하는 조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선배는 승진도 빠르고 일도 힘들지 않은 좋은 보직을 맡깁니다. 능력도 없고 잘 모르는 윗사람이 성장하라면서 어려운 보직을 줍니다. 그리고 승진은 못 시킵니다.
 
 
그렇게 귀찮은 일들을 많이 하다보면 인내심은 성장할지 몰라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불합리함을 느낍니다. 저는 그런 과정들이 제가 제 자신을 잘 보살피지 못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 즈음에 은행에서 탈출해서 제 살 길을 찾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5. 착각

은행에 다니다보면 '은행 = 나' 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애사심이 있고 주인의식이 있어서 열심히 일하는 건 좋은데, 사실 현실은 길어봤자 55살 정도까지 당신은 은행원을 할 수 있습니다. 은행이 급여도 많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좋은 직업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워주지만 길어봤자 55살까지란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본점에 가든, 영업점에 있든 '은행 = 나' 라고 착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은행은 직업이 아니라, 그냥 직장일 뿐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회사는 그래도 그 회사에서 하던 일이 나와서도 도움이 되서 다른 회사를 차려서 퇴직 이후의 삶에 기여를 하는 면이 있는데, 은행원 대부분은 퇴직한 순간 놀랍도록 그냥 뒷방 아저씨, 뒷방 할아버지가 되버립니다. 왜냐하면 은행에서 나와서 개인적으로 고리대금업을 할 수도 없으니까요. 
 
 
저는 그래서 주말에 명함도 들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제가 은행원이고 고소득자라고 자부심을 느끼는 게 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저에게 필요할 때, 예를 들면 가끔 부동산 거래 등에서 제 말의 권위가 필요할 때는 은행원이라는 걸 일부러 밝히기도 하지만 저에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퇴직을 앞둔 지점장, 본부장, 부행장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고민은 비슷합니다. 퇴직하면 뭘 하고 살아야할까 그런 고민들을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경험은 퇴직 이후의 삶에 별 필요가 없을 때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렇다고 밑바닥부터 시작하기도 겁이 납니다. 나 지점장 출신인데? 부행장 출신인데? 내 아래 직원을 수십명, 수백명 뒀었는데, 내가 그런 일을? 사실 이런 마인드는 저주에 가깝습니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당신은 55살 이후에 남은 여생을 방안에만 있게 되고 아무 것도 못하고 지내게 될 겁니다. 
 
 

6.  퇴사 결정

그렇게 저는 본점에서도 지속적으로 부동산 투자와 사업을 벌였습니다. 평일에 할 수 없으니 주말에 정말 시간과 몸을 갈아서 바쁘게 뛰고 움직였죠. 진짜 일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타이틀도 필요 없습니다. 다만 저를 노후까지 안정되게 해줄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줄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바랍니다. 저는 그런 힘과 지혜를 기르는 과정이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20년 7월 사업과 투자로 어느 정도 기반을 만들어놓고 퇴사를 합니다.
 

 

 
 
사실 제가 현재하고 있는 사업이나 투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 같이 대출금리가 많이 오르고, 불황이라 사업이 잘 안 되서 위기가 닥쳐오면 다시 회사를 지원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에게 회사를 고를 수 있는 기준은 저를 성장시킬 수 있는지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남은 생은 급여를 많이 준다고, 내 결정권은 1도 없고, 전문성도 없고, 불합리한 일을 제 자신이 겪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나 자신을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뭘지, 그리고 나를 경제적으로 안정시켜줄 수 있는 일이 뭘지 고민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물론 회사 일을 열심히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니까 오해 없으시길 바라겠고, 사실 은행이 아닌 어떤 직장인이든지 할만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은행은 뭐니 해도 돈을 많이 주는게 정말 장점이긴 합니다. 그 점은 저도 인정하면서 은행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저와는 다른 좋은 경험 위주로 은행 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남들보다 예민했고 어느 순간 머리가 커버린 것 같습니다. 제 삶에 대해서 자기 시간과 자기 결정권이 있기를 바랬고, 회사가, 윗사람이, 선배가 저의 삶을 계속 휘둘 수 없게 만들고 싶단 생각이 강합니다. 그럼 은행 퇴사 이야기는 여기까지고 앞으로도 또 다른 은행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은행-퇴사-이유-방법
은행-퇴사-이유-방법

댓글